통도사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영축산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하여 통도사라 한다. 또한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한다.

창건 당시에 대웅전·적멸궁(寂滅宮)·법당 등의 건물이 있었고, 금강계단에 진짜 부처인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으므로 대웅전에는 부처의 모형인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절 이름은 영취산의 기운이 서역국 오인도(西域國五印度)의 땅과 통한다고 하여 통도사라 불렀다고 한다. 자장은 이 절에서 금강계단을 쌓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하여 계율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대웅전은 본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지금의 건물(대웅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아울러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금강계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은 국보 제290호로, 통도사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의 법당이다. 통도사의 가람건축들은 대부분 동서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대웅전은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뒤쪽에는 금강계단이 있다. 계단의 사리탑 속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되어 대웅전 안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고 큰 불단만을 마련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3년 선조 36년에 송운대사(松雲大師)가 재건하고 다시 1641년 인조 19년 우운(友雲)이 중건하였다.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순천 송광사(승보사찰)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로 불리고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여 불보 사찰이라 불린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구룡지
대웅전 옆의 연못은 구룡지(九龍池)로 불리며, 통도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문수보살이 진신사리와 가사를 주면서 신라 영축산의 독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봉안하라고 알려주었다. 자장이 여덟 마리의 용은 쫓아 보냈으나, 마지막 남은 용이 연못에 남아 터를 지키고 싶어 하여 연못 일부를 메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지금의 구룡지라는 전설이다.


통도사의 암자들


1345년(충목왕 1) 창건된 절로 1578년(선조 11) 숙관 태흠(肅寬泰欽)이 중창했다.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탄 후 여러 차례 중건, 중수하였는데 회봉 지오(檜峰志五)가 중수해 오늘에 이른다. 현재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19개 산내 암자 중 하나로서 절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통도사 서북쪽의 산내 암자로는 비로암을 비롯해 안양암, 자장암, 극락암, 백운암, 축서암 등이 있다.

비로암

절의 건물인 비로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우측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고, 현판은 경허(鏡虛)의 친필이라고 전해오나 확실하지 않다. 또한 법당에서는 탱화(幀畵) 8점을 봉안해왔는데, 현재 3점은 비로암에 있고, 나머지 5점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극락암

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 충혜왕 복위 5년(1344)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영조 34년 (1758) 지홍 대사가 중건하였고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 중수하였다. 극락암은 한암 , 월하, 벽안 , 보안, 혜암 스님 비롯하여 수덕사 전 방장 원담스님, 은해사 전 조실 일타스님, 해인사 원로 도견 스님, 화엄사 전 주지 도광 스님 등 제방의 조 실 스님들이 모두 이곳에서 정진하는 등 한강 이남의 제일가는 호국선원이라 할 수 있다


안양암


안양암은 통도사 팔경 가운데 하나인 안양 동대에 위치한 암자로 통도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안양암에 대한 구체적인 내력은 전하고 있지 않으나 ‘불종찰 약사’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21년(1295) 찬인 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고종 2년(1865) 우담 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중창이 이루어진 1865년 당시 안양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북극전이 건립되었으며,
북극전은 보상암이라고도 한다

수도암

수도암은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그마한 암자이다. 고려 공민왕 21년(1372) 이관 대사가 창건하고 그 후 정신 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서운암

고려 충목왕 2년(1346) 충현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근래에는 성파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삼천불전과 산신각, 선원, 요사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래불이 성보박물관 이운 보관 중이다. 또한 서운암은 고려대장경을 원형 그대로 도자기판에 조성한 십육만 도자대장경이 봉안되어 있어 인류의 평화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장경각)


옥련암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 위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공민왕 23년(1374)에 쌍옥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철종 8년(1857)에 호곡 청진 두 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내에 전하는 이야기로 옛날 이 옥련암에 ‘장군수’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물을 마신 스님들이 다른 암자의 스님들 보다 힘이 세었다고 하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백련암

백련암은 공민왕 23년(1374) 월화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인조 12년(1634) 현암 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주위에는 울창한 수림과 은행나무로 인해 더욱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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