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고려청자(高麗靑磁)는 고려 문종(文宗) 시대 전 후에 송(宋)의 화남 절강성 월주요(華南浙江省越州窯)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것으로서 고려청자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푸른색 도자기로 당시의 뛰어난 기술과 화려한 귀족 문호를 엿볼 수 있다 조상들의 전통적인 도자기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송나라의 기술을 받아들여 더욱 발달하였다

초기의 청자는 매우 소박한 데서 출발하여 점차 기술이 숙련됨에 따라 예종(睿宗)·인종(仁宗) 때에 이르러 이른바 비색청자시대(翡色靑磁時代)를 이루며 고려청자의 진면목을 보이는 상감청자를 낳는데 이는 순전히 고려인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상감 법이란 자기를 완전히 건조시키기에 앞서 무늬를 음각하거나 새김판으로 찍고 그 자국에 백토(白土) 혹은 적토(赤土)를 메워 일단 초벌구이한 후 청자유를 발라 굽는 것인데 백토는 순백, 적토는 흑색으로 발색하여 무늬가 나타난다. 이러한 방법은 나전칠기(螺鈿漆器)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며 동제용기의 입사법도 같은 시기에 유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감청자에 나타나는 무늬로는 '운학(雲鶴)·양류(楊柳)·보상화(寶相花)·국화(菊花)·당초(唐草)·석류' 등 다양한데 특히 운학문과 국화문이 가장 많이 쓰였고 국화문은 조선시대 초기까지 쓰이고 있다.

청자의 종류는 대체로 세 가지로는 무늬를 새기지않은 순청자와 표면을 완전히 파서 모양을 내는 투각 청자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거기에 다른 색의 흙을 메워 만든 상감청자 등이 있다

 

청자 이름 붙이는 방법
청자 상감 운학 무늬 매병청자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청자는 청자, 백자 도자기의 종류를 말하며, 상감은 상감 투각 등 무늬를 만드는 방법을 말하고, 운학 무늬는 구름과 과일 등 도자기에 새겨진 무늬를 말하고, 매병은 병 주전자 찻잔 등 도자기 용도를 말한다

아이힘 한국사

상감 청자 만드는 과정

1. 흙에 물을 섞어 반죽을 한다
2. 물레를 이용해 모양을 만든다
3. 무늬를 새기고 다른색으로 메운다 그늘에서 말린 다음 진흙으로 만든 가마에서 굽는다
4. 광택을 내기 위해 유약을 바른다
5. 마지막으로 더 높은 온도에서 한 번더 굽는다

청자의 용도는 주로 왕실이나 귀족들이 향로 촛대 그릇 접시 잔 병 주전자 등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되었다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 청자 상감 운학 무늬 매병, 청자 상감 모란 무늬 베게, 청자 상감 모란 무늬 표주박 모양 주전자 청자 참외 모양 병 청자 상감 국화 무늬 잔과 잔받침 등이 있다

인쇄술의 발달

고려시대에는 남부를 이용한 목판 인쇄술과 금속활자를 이용한 활 판 인쇄술의 발달을 하였다

목판 인쇄술
목판 하나에 글자를 모두 새겨 책을 찍어내는 방법으로 신라 때부터 이어져 고려시대에 크게 발달을 하였다. 한 종류의 책을 대량으로 인쇄하는데 효율적이고 갈라지고 쉬워지는 나무의 성질 때문에 보관이 비교적 어려운 편이다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의 침략을 이겨 내기 위해 만든 합천 해인사 대장경 판이 남아 있는 유산이다

활판 인쇄술
금속활자를 조합하여 활판을 짜고 책을 찍어 낸다 고려시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금속활자를 조 합하여 여러 종류의 책을 찍어 낼 수 있다 한 글자씩 금속으로 만들어져 쉽게 닳지 않고 보관이 비교적 쉬웠다. 금속활자로 판을 짜는 인쇄한 것은 직지심체요절이 있다


직지심체요절
세계최초 금속활자 인쇄 본으로 유럽에서 만든 금속 활자보다 70여 년 이상 앞서 제작된 것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 본으로 알려져 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되었으나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234년에 인쇄된 상정 고금 예문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 본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전에 지지는 않는다

금속활자를 인쇄하는 과정
1.밀랍에 한 글자씩 새 겨 글자를 만든다
2. 밀랍에 새긴 글자를 가지로 연결해 흙으로 감 싼다
3. 흑으로 감싼 틀에 쇳물을 붓는다
4. 금속활자를 때어 내어 다듬는다
5. 인쇄할 내용에 맞추어 활자를 배열한다
6. 활자 면에 먹물을 칠하고 그 위에 종이를 놓고 찍는다



최무선과 화포 개발

왜구의 침략으로 고려의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자 최무선은 이 어려움을 이겨낼지 고민하다가  원나라의 기술자를 만나 화약에 대해서 배우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화약과 화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최무선은 나라에 건의해 화약과 화포를 다루는 관청을 설치하고 대장군포 등의 무기를 만들어 냈다
최무선은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가지고 진포에서 외고를 크게 물리쳤다 이것이 진포 대첩이다

문익점과 목화


고려시대의 문익점의 목화를 지배 하게 된 것은 고려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려의 귀족들은 비단과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지만 평민들은 삼베와 모시 등을 이용해 옷을 지어 입었다. 문익점은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목화를 이용해 따뜻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와 장인과 함께 재배를 성공하였다. 고려 조정은 목화 재배를 지원하여 목화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백성들은 목화를 이용하여 실을 만들어 옷을 만들어 먹고 목화솜으로 옷과 이불을 만들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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