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주변 나라와의 관계


고려는 고려가 세워질 무렵 한반도 주변 여러 나라에서도 변화가 나타났고 건국 이후 고려는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거란 여진 등의 북방 민족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거란 (요나라 )
거란은 중국 북쪽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 목 민족으로 916년에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요라고 바꾸었다. 태조 왕건은 북진 정책을 추진하며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멀리 하고  942년 태조 왕건이 고려 거란에서 온 사 신들을 귀양 보내고 선물로 가져온 낙타를 만부교 다리 밑에서  굶겨 죽인 '만부교 사건' 이있었다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다

송나라
송나라는 960년 중국 대륙의 혼란을 수습 하며 세워졌고, 고구려는 자신을 보내 신 선 관계를 맺었다 송나라는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서 고려는 송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서로 교류하였다

여진 (금나라 )
여진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말갈'이라고 불리며 여러 부족으로 흩어져 살고 있었다.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생각하고 말과 가죽을 펼치기도 하였는데 세력을 키워 고려해 국경을 위협했고 12세기 초에는 금나라를 세웠다

일본
일본 고려와 친선 관계를 이어 나가며 교류 했다

거란의 침입

보라는 약 30년간 총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다

거란의 1차 침입과 서희 담판

만부교 사건 이후 고려와 송나라의 친분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란은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옛 고구려의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거란의 침입과 고려가 크게 패하고 대부분의 신하들은 거란의 요구에 응 하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서이는 크게 반대하던 시점에서 고려 군이 거란에 맞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나가서 거란과 담판을 지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서희 담판이다
거란은 고구려의 옛 땅이 자기네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송나라와의 교류를
탐탁해 하지 않았다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의 후손으로 고려라는 이름을 보면 압록강 근처에 옛 고구려 영토는 우리 땅이고 여진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란과의 교류를 막고 있다. 여진을 몰아내고 길이 트이면 우리는 거란과 서로 통할 것이다

거란 장수 소손녕을 만난 서희는 거란의 목적을 알아채고 담판을지어 거란을 스스로 물러나게 했고 강동 6주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거란의 2차 침입과 양규의 활약

서희 담판 이후에 고려가 송나라와 관계를 지속 하면서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여 고려의 도읍인 개경까지 함락시키기도 했다. 당시 고려 왕이었던 현종은 개경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신까지 했고 결국 현종이 신하를 보내 고려의 왕이 직접 거란의 왕을 만나러 가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거란을 회유했다
양규는 현종의 약속을 받고 돌아가던 거란 군을 끈질기게 쫓아가 곳곳에서 크게 승리 하였고 거란은 많은 피해를 입고 압록강을 건너 되돌아갔다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고려가 거란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강동 6주를 돌려 달라고 하는 거란의 요 구를 거절 하자 거란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고려를 침입 했다
흥화진 근처에서 강감찬은 거란을 크게 물리쳤다. 거란은 포기하지 않고 개경 근처까지 밀고 내려왔고 고려의 반격으로 개경은 함락 시킬수는 없었다
후퇴하던 거란은 돌아가던 길에 귀주에서 고려 군과 크기의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것이 강감찬의 '귀주대첩'이다

윤관의 여진 정벌

여주는 부족을 하나로 모아 세력을 키웠고 고려의 국경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진과의 전투를 극복하기 위해 윤관이 나섰다

윤관은 여진의 군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기병 중심의 부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왕에게 건의해서 별무반을 만들었다
별무반은 기병 위주의 신기군 보병 위주의 신보군 승려로 이루어진 항마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 무반을 이끌고 전쟁에 나선 윤관은 여진을 크게 물리쳐서 동북 9 성을 쌓았다

고려의 대외 교류


고려는 송나라와 가장 활발하게 교류 했고 거란과 여진 일본과도 교류를 이어갔다 지도를 통해서 한번 살펴보자

 

아이힘 한국사

 

고려의 대표 국제 무역항 벽란도

벽란도는 개경 근처 예성 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로 속 나라와 일본의 아라비아 상인들은 바닷길을 따라 벽난로를 드나들었는데 이때 아라비아 상인들 내게 고려가 코리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 주요 도시에서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큰 가게인 시전이 설치되어 관청 또는 귀족들에게 물건을 제공했다. 지방에는 종종 시장이 열렸으며 절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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