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건국

후 고구려에서 활약한 왕건은 궁예의 신하로 활약하며 세력을 키워 고려를 세웠다  후 고구려의 왕건은 후백제의 나주 일대를 점령하여 궁예의 신임을 얻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궁예가 점차 난폭해져 호족과 백성들의 민심을 잃자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왕건은 세 나라의 이름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의 고려를 정하고 이듬해에 도읍을 다시 송악 개성으로 옮겼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

왕건은 고려를 세운 다음 후삼국을 통일 했다 . 견훤은 신라를 공격해서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에게 왕위를 이어 가겠다 신라를 돕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는 왕건은 신라를 공격하고 돌아가던 견훤과 공산 지금의 대구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견훤이 크게 승리하였다

930년 고창 전투
견훤이 다시 고창 지역을 정복 하려고 하자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고창에서 전투를 벌였다. 왕건은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 크게 승리하였고 이후 고려 후삼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935년 견훤의 투항과 신라의 항복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은 견훤의 맏아들 신검은 군사를 일으켜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견훤은 몰래 빠져나와 고려에 투항하고 신라의 경순왕은 왕건에게 나라를 넘겼다

936년 후백제 멸망 후삼국 통일
왕건은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 하였고 후백제가 멸망 함으로써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신라를 흡수바고 후백제를 무너뜨려 후삼국을 통일했다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민족 통일을 이룩하였다

또한 왕건은 항복한 견훤에게 토지와 노비를 내려서 후하게 대접 했고 경순왕은 경주 지역을 다스리는 사심관으로 삼기도 했다

아이힘 한국사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의 의의

신라의 지배층인 진골 귀족은 고구려의 지배층인 중앙 귀족과 지방 호족으로 확장되었다
1. 고구려의 건국으로 지방 세력이 새로운 지배 세력이 되어서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이 크게 늘어났다
2. 옛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발해의 유민들까지 포용함으로써 민족 통일을 완성했다
3. 삼국의 다양한 문화를 통합하여 민족문화의 토대를 만들었다


태조 왕건의 정책

호족을 통합하기 위해서 먼저 힘이 센 지방 호족의 딸들과 혼인하여 왕 씨 성을 내려 주는 사성 정책을 펼쳤고 그럼으로써 자기편으로 만들어 호적을 우대했다

한편 호적을 견제 하기 위해서는 개경에 거주한 호족들에게 출신 지역의 사심관이 되어서 지방을 통제하도록 하거나 지방 호족의 아들을 개경에 보내도록 하는 기인 제도를 실시했다

백성의 안정을 위해서는 세금을 줄여 주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 주는 흑창을 설치했다

또한 태조 왕건은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서옛 고구려의 옛 도읍인 서경을 중시하고 그곳에 성을 쌓고 군대를 머무르도록 하였고 북진 정책으로 고려 영토가 더 넓어졌다


왕건의 훈요 10조 바로알기

제1조.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불교를 장려할 것

제2조. 모든 절은 도선의 풍수지리설에 맞추어 세우고 함부로 짓지 말 것

제3조. 왕위는 맏아들이 계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맏아들이 현명하지 못하면 다른 아들에게 계승할 것

제4조. 우리나라는 중국 풍속을 본받아 왔지만 지역과 풍습이 같지 않음으로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고 특히 거란은 짐승의 나라 이므로 그들의 제도를 본받지 말 것

제5조. 서경을 중시하여 1년에 100일 이상 서경에 머무를 것

제6조. 연등회와 팔관회를 성대히 열 것
...(중략 )

이상은 고려사의 글로 왕건이 안정된 사회를 이루기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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