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고구려 옛 땅을 지배했다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 이곳저곳 이동시켜 흩어져 살게 했고 이에 반발해 대조영의 유민들을 모아 발해를 세우 게 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자


  1. 대조영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영주를 탈출했다
  2. 천문령에서 뒤를 쫓던 당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3. 698 연 대조영이동모산 기슭에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계승한 발해를 세웠다

발해 주요 왕의 업적

대조영의 아들 무왕
고구려를 멸망 시킨 당나라 신라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당나라를 먼저 공격하기도 했고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는 친 성관계를 맺었다

나라의 안정을 도모한 문왕
당나라와 친선 관계를 맺고 신라와도 교류를 시작하였고 일본과 친선 관계를 이어갔다 당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제도를 정비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전성기를 이끈 선왕
주변지역을 정복하여 옛 고구려의 땅을 대부분 차지했다 넓은 영토와 발달된 문화를 바탕으로 발해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발해는 당나라로부터 바다 동쪽의 번성한다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고 불렸다

발해의 정치 사회 문화

문왕은 유학교육 기관인 '주자감'을 설치했고 정치 제도를 정비했다 선왕은 넓어진 영토를 바탕으로 지방행정 제도인 5 경 15부 62주를 완성했다


발해5경 아이힘한국사

발해의 도읍은 대조영이 동모산 기슭을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세운후 발해 의도읍은 여러 번 바뀌었다 무왕은 동모산 기슭에서 중경으로 도읍을 옮겼고 문왕은 중경에서 상경 그리고 동경으로 도읍을 옮겨갔다 그중에 가장 오랫동안 발해의 도읍이었던 곳은 상경이다 상경에는 궁궐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고 한다

 

발해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사회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북방 민족인 말갈족이 함께 세운 나라이다 왕족과 귀족등 지배층은 대부분 고구려 유민으로 건국초부터 고구려 뒤를 이었다고 한다 한편 백성들 대부분운 말갈족으로 구성되어있다

 

발해의 특산품은 말과 담비 가죽이 주변의나라에 인기가 좋아서 높은 관리들만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발해 사람들은 다소추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주로 밭농사를 지어 곡식을 얻었고 벼농사는 일부 지역에서만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 가축을 길러 고기를 얻었고 근처 바다에서 다양한 해산물을 얻었다고 한다

 

발해의 문화유산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당나라와 말갈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루었고 다양한 불교문화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

밭농사를 통해 수확한 곡식은 다양한 모양의 토기에 보관을 했다 

발해 이불병좌상 : 두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형태의 불상으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연꽃무늬 수막새 :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무늬로 만든 기와의 일종으로 고구려 영향을 받을 형태로 여겨진다

팔보 유리정 : 상경성에서 발견된 우물로 팔각형 돌우물이다

발해 석등 : 상경성 절터에서 발견된 석등으로 약 6m 높이로 고구려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영광탑 :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발해의 대표적인 탑이다

 

발해 문화의 특징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여러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킨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 문화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정혜공주 무덤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 무덤양식의 돌방무덤 형태로 무덤에서 발견된 돌사자상은 당나라의 돌 사장상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고구려의 기상을 잇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정효공주 무덤은 고구려 당나라 및 발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무덤 내부의 모습이다

 

 

아이힘 한국사

발해의 교통로와 대외교류

상경에서 출발하는 5개의 교통로를 만들었는데 거란도 영주도 조공도 신라도 일본도가 그것이다

거란도는 옛 부여의 땅인 부여부에서 랴오허강을 거쳐 거란으로 이러지는 길이다 영주도는 대조영이 발해를 세울 당시 영주를 탈출하여 동모산에 이르렀던 길이다 조공도는 발해가 당나라에서 사신을 보낼 때 이용한 길로 당나라와 발해의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 때도 이용하였다고 한다 신라도는 발해에서 신라로 이어지는 육지길이며 일본도는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한다

 

중국은 발해가 자기 나라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발해의 영토는 우리나라의 북한 지역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땅까지 이르러 고구려 문화화 기상을 계승한 우리 민족의 역사이다

 

발해의 왕족은 고구려 장수 대조영의 후손이고 귀족들은 대부분 고씨 등으로 고구려 사람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해는 스스로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밝혔고 당나라와 신라 일본 등 이웃 나라들도 발해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임을 인정했다

 

고구려를 닮은꼴 발해의 유적들은 기와와 온돌 등 여러 가지에서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증거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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