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원성 왕릉 앞에 세워져 있는 석상을 통해서 신라가 서역과 교류했으며 서양인들이 신라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경주에 원성 왕릉을 찾아가 보았다

원성 왕릉 주변은 정비가 잘 되어서 주차장도 넓었고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 먹기에도 너무 좋은 장소 같았다 가을햇살도 도시락을 유발했지만 오히려 썰렁한 느낌이 들까 봐 도시락은 삼가했다

아이들과 통일신라 시대의 괘릉을 이야기하면서 석상의 생김새나 부리부리 한 눈과 매부리 코 덥스룩 한 턱수염 등이 서역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해서 통일신라가 서역과의 교류했음을 이야기 나누었다

무열 왕계를 종식시키고 내물왕 12대손이던 원성왕이 하대 신라의 새로운 왕통을 일으킨 실질적인 개창자라고 볼 수 있다
원성왕이라는 그의 시호에도 드러나듯 무열왕 계 김주원과의 권력 다툼에서 왕권을 차지하게 되면서 오랜기간 집권해온 무열 왕계를 종식시켰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 누구의 왕릉인지도 모른 채 괘릉 마을이라는 미라고 불렸다. 마을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수중의 장례 지낼 때 관을 돌 위에 걸고 흙을 쌓아서 능침으로 하여서 괘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석물들이 남아 있고 통일신라 27명의 왕 중 화장을 한 경우는 문무왕 효성왕 선덕왕 원성왕에 불과하며 모두 화장한 후에 동해 앞바다에 수장하거나 산골 하였으나 원성왕만은 산골 하지 않고 봉분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 왕릉은 18세기 이전부터 계속 괘릉으로 불리다가 1931년  숭복사  비편이 발견되면서 괘릉이 원성왕릉임이 밝혀졌다

당간지주 상부의 모양과 유사한 난간석의 지주도 독특하게 보인다 무덤 둘레 호석에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12 지신상이 배치되어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성왕릉은 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잘 완비된 능으로 유명한데 전대와는 달리 서역인 이미지의 석인상 1쌍이 추가되어 석인상 2쌍(문무관 1쌍씩) 사자상 2쌍 십이지상 12 구라는 조합으로 완성되었지

 

 

서역 이미지 석인상

 

원성 왕릉 이전까지는 유례가 없던 독특한 얼굴 모습과 머리띠 복식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방망이를 들고 있는 자루의 모습  옷소매를 걷어 팔근육을 내 보이는 모습이 어떤 흉악한 기운도 모두 무찌를 어벤저스급 파워를 갖춘 사실적 표현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게다가 곱슬곱슬 긴 파마머리에 머리띠를 하고 있는 듯한 독특한 복식도 있고  이복식은 전통 매듭의 연구에도 큰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문인상


문인상에 허리띠 매듭 도안 전통 매듭 연구의 크나큰 자료로 쓰이고 있으며 이들이 입은 복장 또한 삼국 복식 연구의 자료로 쓰인다고 한다 앞코가 번쩍 올라간 신발이 모습도 독특하다

사자의 모습도 사발을 지키는 네 마리 사자의 엄숙함과 용맹함이 갈퀴 표정 눈동자 다리 근육 발톱 하나하나에 서려있다

무엇보다 뒷모습의 꼬리가 감겨 올라간 듯한 모습도 독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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